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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생각하는 손’ 김희정 예술감독, 정순도 음악감독, 신창섭 음향감독 “장인들 자체가 예술”

입력 2021-11-20 11:27

생각하는 손 신창섭 김희정 정순도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신창섭 음향감독(왼쪽부터), 김희정 예술감독, 정순도 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그분들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국가무형문화재 김정옥(84) 사기장 보유자와 김혜순(77) 매듭장 보유자가 직접 무대에 올라 작업과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이하 생각하는 손, 11월 20일까지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 신창섭 음향감독은 “장인분들의 서사적인 부분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그분들 자체가 예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인고의 매듭 작업과정, 9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 300여년이라는 유구한 역사가 된 장인, 김정옥 사기장 보유자를 비롯해 함께 무대에 올라 같은 시간 속에 선 3대(아들 김경식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전승교육사, 손자 김지훈 사기장 이수자)…이분들을 가장 잘 나타내는 건 음향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에는) 이머시브 실감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작업 소리, 말씀들 등을 현장감있게 들려드릴 수 있게 됐죠.”

‘생각하는 손’은 국립무형유산원 개원 이래 처음으로 제작하는 브랜드공연으로 경남요를 9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김정옥 사기장 보유자와 김혜순 매듭장 보유자의 작업과정을 현대무용과 시각적 풍경으로 아우르는 사실주의 작업무용극이다. 대본과 연출을 책임진 김희정 예술감독과 김용걸 안무가, 박동우 미술감독, 정순도 음악감독, 신창섭 음향감독, 민천홍 의상디자이너, 구유진 분장 디자이너 등이 의기투합했다. 

 

 

◇기술이 우선인 시대, 노동의 가치를 숙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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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김희정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그로 인한 세계화 과정을 겪으면서 기술이 주목받고 있죠. AI, 4차산업혁명 등 기술이 우선인 시대에 사람의 노동 가치를 말하고 싶었어요. 완전히 잊혀져가는 노동의 가치, 장인의 손, 장인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죠.”


‘생각하는 손’에 대해 이렇게 전한 김희정 예술감독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무형유산원이 처음으로 브랜드 공연을 창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고민과 논의를 했다. 브랜드 공연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공연화되지 않은 것들을 열거해 리서치하고 공부하면서 무대화 여부를 가늠했다”고 기획과정을 설명했다.

“음악을 전공하다 보니 무엇이든 음악적으로 듣는 습관이 있어요. 장 담그기, 막걸리 빚기, 김장 등 그 리스트를 보는데 막걸리가 뽀글뽀글 익어가는 소리 등이 음악처럼 들려왔어요. 충분히 공연화시킬 모티프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장인, 예술적 모티프와 재료가 되는 그들의 작업소리 등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김희정 감독은 털어놓았다.

“장인을 만나러 가는 과정이 그간 공연하던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요. 대화 중 소름끼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죠. 몇리를 걸어 수kg의 진흙을 지게로 져 나르고 물을 떠오고 세심하게 장작을 골라 며칠밤을 꼬박 세워 가마에 불을 지피고 온도계 없이 불꽃만으로도 색과 온도를 가늠하고…흙과 물과 불이 만나 하나의 도예로 탄생하는 장고의 과정을 접하는 순간, 누에에서 실을 뽑아 매듭이 완성되기까지의 행위 자체가 공연이었어요.”

이어 김희정 감독은 “기계화된 데서는 나올 수 없는 색감과 질감들, 누에에서 실을 뽑아 물들이고 매듭이 완성되기까지의 시간들, 사람의 손과 노동이 우선인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게 시작이었다”고 덧붙였다.

“장인을 주제로 2차 가공까지 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분들 존재 자체가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장인의 소리 음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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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정순도 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본질과 변형에 대한 차이를 없애자고 마음먹었어요. 새로 만들거나 2차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흙, 불, 실 등 그 자체를 음악 속에 녹이고자 했죠.”

정순도 음악감독의 말처럼 장인의 소리들은 그 어떤 음악보다 창의적이며 새로웠고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었다. 정 감독의 표현처럼 “본질 그대로를 받아서 변용하는 아이디어”로 “손으로 하는 아날로그 작업이 디지털적 음향 통해 구현되고 전통적인 매듭 이미지, 조선시대의 남녀 가창곡, 정가 등 옛 소리, 기계로 변주한 현대적 사운드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 인간의 원초적 목소리에서 시작해 컴퓨터로 변형된 소리 등이 융합하는 공연이죠. 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지만 이것저것이 섞인 혼합이 아니에요. 시간에 따라 흘러온 특성 그대로, 인공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융합이죠. 실연되는 악기도 콘트라베이스 하나예요. 콘트라베이스에 전자적 장치를 추가해서 변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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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김희정 예술감독(왼쪽부터), 신창섭 음향감독, 정순도 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정 감독의 설명에 김희정 감독은 “무대 전체가 용광로가 돼 장인의 움직임, 춤, 음악 등 모든 것들을 녹여내는 가마 신”을 예로 들며 “흙 밟는 소리, 물레 차는 소리,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 턱 끝까지 차 오른 헉헉거리는 숨소리 등만으로도 감동이다. 이들과 협연하는 라이브 악기는 가장 근본적인 저음을 내는 콘트라베이스 뿐”이라고 말을 보탰다.

“그들의 모든 소리들이 음악이 돼요. 녹음한 실제 흙 밟는 소리와 콘트라베이스의 협연이 무용의 백그라운드 음악이 되죠. 매듭을 위한 끈 짜기, 끈 매달기, 실타래 돌리기 등이 국악기와 비슷한 소리를 내기도 해요. 공예 디바이스가 음악악기처럼 들리는 데 소름이 돋았어요. 그 소리들을 그대로 시연하고 무용수들은 그 작업의 소리가 원천이 된 음악에 맞춰 안무된 춤을 추죠.”

이어 “김정옥 선생님의 도예촌, 김혜순 선생님의 작업실의 공간감이 그대로 무대 위에 구현되기를 바랐다” 덧붙이는 김희정 감독에 신창섭 음향감독은 “음악을 비롯해 무용, 조명, 무대연출, 세트 등 모든 것이 장인의 노동에 헌정하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현장 소리와 기계 소리가 같은 순 없지만 가치 있게 들릴 수는 있어요. 그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죠. 가장 어려운 건 현장의 소리와 녹음돼 MR로 구현되는 음악들의 밸런스였어요. 핸드메이드 테크를 쓰다보니 현장의 돌발상황 대처가 정말 중요한 공연이라 초긴장상태죠. 음악의 큰 소리에 현장의 소리들이 사라지지 않게, 최대한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밸런스로 들려드리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장인에 집중되는 현장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곤 “음악을 완성해 음향작업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악과 음향이 실시간으로 긴밀하게 함께 하는 동시작업이었다” 덧붙이는 신창섭 감독에 정순도 음악감독 역시 “선생님들이 실제로 내는 원초적 소리, 그를 음향으로 입힌 소리를 조명, 무용, 장면 등의 표현에 맞는 음악으로 아우르고 재창조하는 미션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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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신창섭 음향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장인들의 작업에 음악이 살짝 곁들여져 얹혀 가는 방식이었어요. 의도적이지 않게, 자연스레 그렇게 됐죠. 실이 끈이 되고 매듭이 되는 과정을 동래학춤으로, 국악적 느낌을 강하게 살려 표현한 마지막 장면이 그래요. 매듭을 여자들의 장신구, 노리개라고만 알고 있지만 선비들도 많이 사용했어요. 선비들이 하얀 옷에 작은 매듭을 극대화한 매듭을 묶고 학춤을 추는데…그 흔들리는 멋이 강렬했어요. 의도적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곁들여 강하게, 학춤에서 흔들리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음악으로 표현했죠.”

 

정 감독의 말에 김희정 감독은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양분되는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했다”며 “마지막 장면의 동래학춤은 남성들의 춤이지만 김용걸 안무가에게 유니섹스하게 표현해 달라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남성들의 춤이지만 여자 무용수들이 더 많이 배치됐어요. 도예는 남성, 매듭은 여성이 아니라 모든 걸 아우르며 마무리하고 싶었거든요. 남녀가 똑같이 춤을 추고 여성노리개처럼 생긴 매듭을 조선 남성들이 쓸 만한 기능적인 걸로 만들어 달았죠. 모든 게 섞인 춤이라서 음악도 그래야 했어요. 전통적인 리듬, 악기를 일렉트로닉 밴드 사운드로 표현했죠.”


◇장인들의 정신과 철학이 깃든, 설명 없이도 만져지는 역사가 된, 누구나 가진 ‘생각하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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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김희정 예술감독(왼쪽부터), 신창섭 음향감독, 정순도 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공연 중 나오는 김정옥 선생님의 ‘나의 그릇들은 가마 속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친구가 된다’, 김혜순 선생님의 ‘인연의 끈, 매듭은 인간의 인연을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모든 것을 하게 한 ‘생각하는 손’이에요. 선생님들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위로의 손, 약손이죠.”

제목 ‘생각하는 손’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김희정 감독은 “장인들의 정신, 철학들이 잘 깃든 공연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정순도 감독은 ‘생각하는 손’을 “설명 없이도 그 자체로 역사가 만져지는 손”이라고 정의했다.

“장인들이 가진 두툼하고 거친 손이죠. 그 자체로도 설명 없이 지금까지 그들이 해온 역사가 만져지거든요.”

정 감독의 말에 신창섭 음향감독은 “사람의 손은 많은 일을 한다. 삶을 영위하고 노동을 하고 예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인의 손은 뇌가 명령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오랜 작업과정을 통해 터득돼 먼저 움직이는 경지에 이른 손”이라고 밝혔다.

“누구나 손을 가지고 있어요. 저도 손을 가지고 있죠. 장인들이 장인정신을 가지고 해오신 작업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도, 손을 가진 저마다가 해온 작업들이 있잖아요. 장인들의 ‘생각하는 손’에서 뉘앙스를 받아 스스로를 장인이라는 생각으로 저마다의 작업에 임하면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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