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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스케이프] K뮤지컬 원년을 위해…신춘수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 ② “글로벌 보편성과 어우러질 우리 것을 찾아서”

입력 2021-12-18 14:00

신춘수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이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저 역시도 예술가로 시작했어요. 철저히 상업예술을 하고 있으면서 예술가 마인드에만 치우쳤었죠. 하지만 뮤지컬은 예술적 성취도 추구해야 하지만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산업이에요. 예술적 성취, 작품 완성도에 신경은 쓰지만 결국 뮤지컬은 영리를 목적으로 투자를 받거나 자신의 돈을 들여 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거든요. 그걸 스스로 인정해야해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할 거예요.”



사단법인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이하 협회) 회장인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뮤지컬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다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며 “영화, 드라마 등은 오버타임을 계산하는데 우리(뮤지컬)만 안하고 있는 건 누구 때문일까를 고민해야할 때”라고 부연했다.

“각 제작사 대표나 프로듀서도 분명 문제가 있어요. (작품 흥행이) 안될 때는 배우, 스태프, 창작진들에게 예술가 마인드를 강요하고 잘 될 때는 다른 얘기를 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죠. 지금까지는 예술가 마인드를 강요하며 정신없이 발전해 왔어요. 하지만 이제라도 예술적 성취와 비즈니스를 확실하게 구별해 시장을 확대시켜야할 때입니다.”

이에 신춘수 회장은 “공연이 가능한 건 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이라며 “이 시장에서 자본을 적대시할 수는 없다”고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처럼 누구 한 사람의 신뢰만으로는 할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까요. 미국의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처럼 100% 투자를 받아야만 공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죠.”


◇해외 진출 발판 마련을 위해 가장 중요해진 ‘투자’
 

신춘수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이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사진=이철준 기자)
“공연예술분야지만 콘텐츠 사업으로서 재조명이 필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건 투자 활성화예요. 투자가 이뤄져야만 해외 진출을 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거든요.”

이에 “제일 중요한 건 투자자, 자본”이라고 강조한 신춘수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 뮤지컬 시장의 문제로 불거진 “투자가 아닌 론”인 ‘원금보장 투자’를 언급했다. 그는 “저 역시도 초반에는 그렇게 투자를 받았다”며 “각자의 선택이지만 위험한 투자다. 오로지 공연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 선택이 안좋은 현상으로 불거지곤 한다”고 지적했다.

“제작비 100% 투자까지는 어렵더라도 한국형으로 최소한 70%까지는 투자를 받아 공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는 협회차원에서 정리할 계획입니다.”

협회에서 틀을 만들 ‘새로운 한국형 모델’에 대해 신 회장은 “펀드 조성”이라고 정의했다. 신 회장은 “잘 되는 공연에 투자해 펀드 평균 수익률을 올려 신작을 개발하는 방식”이라며 “오디컴퍼니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건 100% 투자를 받았고 이익을 나눠가졌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근거는 각 작품별 수익률이 아닌 오디컴퍼니 작품들의 평균수익률”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최근 협회사들과 진행 중인 모델이 현재 잘 나가는 공연과 신작을 한데 모아 투자할 수 있는 펀드조성이에요. 그렇게 펀드의 평균수익률을 높여 리스크를 해체하고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투자자들도 하나의 작품에 투자하는 건 어려워하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투자를 할 겁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생기면 협회에서 책임질 각오로 진행 중이죠.”

이어 신 회장은 “사실 잘되는 작품은 한 회사에서 해도 된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위기는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며 “그렇게 문제가 생기면 배우 출연료 및 스태프 페이 미지급 등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수도, 회사 자체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신뢰의 문제예요. 문제가 생겨 없어진 제작사가 이름을 바꿔 다시 무대를 올리는 일도 많아요. 오디컴퍼니도 너무 힘들었을 때 누군가 회사명을 바꾸라고 조언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투자자들과 일일이 합의를 보고 정리하면서 오히려 좋은 계기가 됐어요.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었으니까요. 각자 비즈니스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은 한정돼 있죠. 함께 하면 훨씬 커질 수 있거든요.”


◇시장의 한계, 우리만의 것과 글로벌 보편성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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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이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사진=이철준 기자)

 

“한국 뮤지컬 업계의 문제와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 뮤지컬은 오픈런(폐막일을 정하지 않은)이 아닌 리미티드 방식이에요.”

그는 보통 3개월 정도 공연되는 한국 뮤지컬에 대해 “할 때마다 제작비가 투자돼야하는 시스템이다. 초연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 시즌을 올리기도 어려워진다. 입소문을 타기도 짧은 기간”이라며 “스타캐스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의 극단 사계도 짧게 하는 공연은 대부분 스타를 캐스팅한다”며 “오픈런이 되면 제작비는 떨어지게 돼 있다. 있는 무대에서 꾸준히 공연하면서 비용을 줄이며 작품을 완성시켜나가는 오픈런을 한번 해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절대적으로 스타가 필요하지는 않아요. 작품 자체로 인정받고 인지도가 생기면 뮤지컬은 꾸준히 공연될 수 있거든요. 초반의 그 작업이 중요하죠. 좋은 작품이라면 새로운 배우를 기용해도 꾸준히 갈 수 있는 정도의 시장은 형성됐다고 믿어요. 하지만 그 층이 좀더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1년에 뮤지컬 한두편을 보는 관객이 인지도 없는 뮤지컬, 배우를 선택해서 관람할까요? 저변이 확대되면 작품으로 선택하는 시장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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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멸화군’ 포스터(사진제공=시작프로덕션)
그리곤 대학로 뮤지컬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에 대해서도 “한 배우가 동시에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사례는 더 이상 만들면 안된다”고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관객모독이에요. 전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죠. 한 배우가 한 작품에 충실해주면 서로 좋은 일이잖아요. 제작사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협회에서도 논의 중입니다. 한 배우가 한 작품에 충실할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죠. 겹치기가 사라지면 작품은 더 좋아질테고 작품 제작 수도 좀 줄어들 거예요.”

뮤지컬의 해외진출에 대해서는 “언어적 한계가 있어 드라마나 영화, 팝처럼 쉽게 국경을 넘나들 수도 없는 장르다. 게다가 대중 대부분이 즐기는 장르도 아니다”라며 “스타플레어의 탄생과 글로벌 보편성 확보”를 강조했다.

“두 가지가 안되면 해외 진출은 너무 힘들어요.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뮤지컬의 작곡가나 프로듀서는 천재예요. 그런 스타플레이어, 프로듀서가 나오고 그들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면 좀더 빨리 해외시장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스타 창작진, 프로듀서의 탄생은 정부 지원이 절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뮤지컬의 지원책은 대관료나 제작비의 일부 등을 일회성으로 제공해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지원 이후 지속가능성은 염두할 겨를도 없는 일회성 지원책인 셈이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작가, 작곡가 등이 제작자 역할까지 해야 하는 지원책”이라며 “정부의 지원도 목표와 방향을 바꿔야할 때다. 직접 돈을 주기 보다는 공공극장을 지원하거나 펀드를 조성해 투자·지원될 수 있게 하는 등 창작자들이 오롯이 창작자로서 역할에 집중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자막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글로벌 보편성의 확보, 그게 완성도이자 경쟁력”이라며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한국적 소재,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이슈가 된 ‘오징어게임’ ‘킹덤’ ‘지옥’ ‘미나리’ ‘기생충’ 등은 한국적 소재이지만 영상문법은 할리우드를 따라가고 있어요. 우리 것과 글로벌 보편성이 잘 어우러진 콘텐츠들이죠. ‘오징어게임’에서 한국적인 건 한국인들이 하는 놀이, 그 하나예요. 지금은 한국 뮤지컬에서 ‘우리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할 때죠.”


신춘수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이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사진=이철준 기자)
◇그럼에도 가능성을 가진 한국 뮤지컬

“한국 뮤지컬은 문제도 많지만 경쟁력도 분명 가지고 있어요. 시장이 불안정함에도 역동적으로 작품이 만들어지고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이렇게 역동적이고 실험적으로 해야 좋은 성과를 낼 확률도 높아지니까요.”

더불어 “대학로의 중소극장 뿐 아니라 라이선스 등의 대극장 시장도 순식간에 발전해 테크닉 등은 이미 정상궤도에 올라 있다”며 “이제 필요한 건 크리에이티브다. 좋은 극장, 작곡가, 연출가, 작가 등에 좀더 경쟁력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제 해외 도전은 필수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듀서들의 도전 정신, 해당 시장에서 신뢰 쌓기 등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결국 투자예요. 국내에서 투자를 받아서라도 해외 시장에 선을 보여야 평가라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뮤지컬인들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 지원이 더해지면 지금 우리가 가진 잠재적 경쟁력을 발현하게 될 겁니다.”

이어 “뮤지컬은 한 극장에서 정해진 인원만 보는 장르고 공연의 주요관객은 학습된 사람들”이라며 “이에 OTT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진출이 쉽지 않은 장르다. 우리가 잘 만들어서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호주, 유럽 등에 라이선스를 주고 그 나라 언어로 공연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몇조씩 벌어들이는 작품들도 있어요. 그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필수 코스로 보는 뮤지컬들이죠. 우리는 세계가 인정할 만큼 세련된 문화와 앞서가는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하면 떠오르는 뮤지컬은 없어요.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프로듀서, 배우, 창작진, 스태프 관객까지 함께 존재하고 존중받는 시장이어야 해요. 각각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2022년 해외로 뻗어갈 K뮤지컬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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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이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앞으로는 대학로 친구들과도 제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마음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제대로, 정확한 시스템으로요.”

지난 10월 5일부터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멸화군’(2022년 1월 2일까지 대학로TOM 1관)에 투자한 신 회장은 “한국 사람들이 개발한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해 프레젠테이션해 해외 무대에 올리는 건 정말 어려운 작업”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대극장과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중소극장 작품이 철저히 분리된 시스템 역시 한국 뮤지컬의 특징이다. 신춘수 회장이 그 특징을 탈피해 대학로 중소극장 뮤지컬 창작진, 프로듀서, 배우들 등까지 아우르기에 나섰다.

“대학로 친구들에게 ‘잘만 만들어주면 내가 해외에서 펼칠게’라고 얘기했어요. 사실 ‘멸화군’은 후배 프로듀서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움직여 투자했지만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하기까지의 과정만 행복하다고 행복할까요? 작업하면서는 행복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는 것 보다는 좀더 준비해 잘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씩조금씩 대학로 친구들과 해보려고 합니다.”

대학로 작품들에 대한 개발·투자와 더불어 신 회장은 해외 시장을 겨냥한 다양한 뮤지컬들을 준비 중이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영감을 받은 대형 가족 뮤지컬 ‘캡틴 니모’는 한국 작가, 미국 작곡가와 작업 중이다. 신춘수 회장 전언에 따르면 ‘캡틴 니모’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두 예술가의 삶을 다룰 ‘피렌체의 빛’,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소설을 무대화할 ‘위대한 개츠비’는 “이미 초고가 완성된 상태다.”

“에밀리 브론테 소설 ‘폭풍의 언덕’도 원제목 그대로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로 준비 중이에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너무 다양하게 무대화된 작품이지만 저는 자신 있어요. 한국 작가, 작곡가와 중극장 이상 규모의 작품으로 잘 발전시켜나갈 예정입니다.”

더불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모노드라마로 준비 중이다. ‘리처드 3세’에 대해 신춘수 회장은 “다 쓴 걸 뒤집는 과정을 몇번씩 반복했다. 작가, 작곡가도 패닉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 기다릴 거고 또 기다릴 거예요. 작품을 잘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아직 완성은 안됐지만 ‘디어 헬렌’이란 작품을 뮤지컬과 음악영화로 만들 생각이에요.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무겁지만은 않은 이야기죠. 아직 밝힐 순 없지만 한 작가와 소극장 작품도 논의 중이에요. 한꺼번에 여러 작품의 초고가 쏟아져 나와서 힘들어하고는 있지만 가능성이 보이니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협회장으로서의 목표에 대해 신 회장은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과 콘텐츠 사업으로의 인식전환을 위해 정부, 업계 사람들, 전문가 등과 대면, 포럼, 공청회, 토론회 등 다양한 형태로 많은 얘기를 할 것”이라며 “한번에 안되도 계속 얘기하고 얘기해서 설득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그 다음에는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등을 엮은 인터내셔널 커뮤니티와 시장이 교류되게끔 하려고 합니다. 그들과 함께 매년 한국 뮤지컬을 선보이는 쇼케이스를 열려고 해요. 우리가 전액 투자를 하더라도 우리 걸 선보일 수 있게요.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는 완벽한 장벽이 있는 곳이지만 그들과 따로 갈 수는 없어요. 교류를 해야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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