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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충실하게 매년 1%씩 성장해 34%, 피아니스트 김선욱 “하루하루가 온통 음악! 여전히 피아노가, 음악이 너무 좋아요”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05-06 18:00
신문게재 2022-05-06 12면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사실 어디 가나 처음이면 데뷔죠. 20대 때는 그 ‘데뷔’가 너무 많았는데 30대에도 데뷔하려니 좀 달랐어요. 그래도 잘 끝났어요. 오케스트라와의 합도 좋았죠. (예술감독이자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Osmo Vanska) 선생님도 보러 오시고…10월 (오스모 벤스케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의 투어도 기대하고 있어요.”



4월 말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의 데뷔 무대를 마치고 독일 뮌헨으로 돌아온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여전히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다”고 전화로 안부를 전했다.

영국 왕립 음악원 회원(FARM)인 김선욱은 2006년 18세의 나이로 40년 역사의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첫 아시아 출신 우승자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3년 독일 본 소재의 베토벤 생가 ‘베토벤 하우스’ 멘토링 프로그램 첫 수혜자였던 김선욱은 런던 심포니, 베를린 필하모닉 등 유수의 글로벌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으며 위그모어홀, 퀸 엘리자베스홀(런던 인터내셔널 피아노 시리즈), 필하모니 드 파리와 샹젤리제 극장에서 개최되는 ‘Piano 4 Etoiles’ 시리즈에 정기적으로 초청받는 독주자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김선욱(사진제공=빈체로)

 

지난해에는 KBS교향악단, 2021/22 시즌 본머스 심포니와 한국, 유럽에서 지휘자 데뷔무대도 가졌다. 곧 열릴 한국에서의 피아노 리사이틀(5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5월 18일 마포아트센터, 19일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준비에 한창인 김선욱은 “원래 하루하루 바쁜 걸 좋아하는데 연주는 그 중 하나의 일정일 뿐”이라고 기분 좋게 웃었다.

“하루하루를 계속 바쁘게요. 숨막힐 수도 있는데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인간은 다 죽잖아요. 죽기 전에 왜 게으르게 살았을까, 좀더 열심히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한다면 너무 후회될 것 같거든요. 그렇게 안하려고 노력 중이죠. 지난해 늦게나마 지휘를 시작해서 다행이에요. 조금만 시기가 늦었다면 분명 나중에 후회될 것 같았는데…다행히 시작을 했어요.” 


 

◇조금은 다른 김선욱…슈베르트, 리스트 그리고 알베니즈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사진제공=빈체로)

“이번 프로그램은 작곡가가 피아노로 나타낼 수 있는 궁극적인 곡들로 꾸렸어요. 작곡가들 간 관계도 조금씩 연결돼 있죠. 제가 지금까지 연주해온 베토벤, 브람스 등의 곡들은 어떻게 보면 고칠 수 없는 성벽같았어요. 구조가 너무 견고해서 조금도 삐져나오기 어려운, 견고한 건축물 같죠. 반면 이번 연주곡들은 구조도 탄탄하지만 순간순간 향락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들이 있어요.”


김선욱은 15일부터 시작되는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네개의 즉흥곡, D. 899’(Schubert Four Impromptus D. 899), 이삭 알베니즈(Isacc Albeniz)의 ‘이베리아’ 모음곡 2권(Albeniz ‘Iberia’ : Book II),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피아노 소나타 b 단조, S. 178’(Liszt Piano Sonata in b minor, S. 178)을 연주한다.

“슈베르트는 모든 근간이 노래, 가곡들이에요. 가곡을 노래할 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똑같지는 않잖아요. 그처럼 감정 등 개인의 상태에 따라 순간순간 달라질 수 있어서 자유롭죠. 알베니즈는 민속음악적 선율, 춤곡, 투우경기를 묘사한 곡도 있는데 뭔가 결과가 정해져 돌아가는 시스템적인 게 아니라 순간 상상력을 발휘한 변화를 꾀할 수 있어서 재밌어요.”

마지막에 연주될 리스트 곡에 대해서는 “그의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라며 “그 안에 5가지 주제가 왔다 갔다 하는가 하면 나타났다 숨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30분 안에 다양한 소트(Sort, 정렬)로 있죠. 그래서 30분을 한 흐름으로 연주하려면 전체적인 뼈대를 갖춰야 하지만 즉흥적인 센스도 필요해요. 알베니즈는 리스트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작곡가고 리스트는 슈베르트 곡들을 너무 사랑해서 편곡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 연주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이 굳이 내막을 다 파악하지 않아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동화되실 수 있게끔 곡들을 배치했죠.”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독일 뮌헨의 자택에 머물며 막바지 연습 중인 그는 “너무 진지하거나 어렵지 않고 관객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들도 없이 물 흐르는 듯 연주하려고 한다”며 “가장 최근에 연주했던 베토벤 마지막 후기 소나타 3개는 연주자가 관객들 호흡을 조절해야 했다. 어느 부분에서는 몰아붙여 숨이 막히게 만들기도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그런 숨막힘이 없어요. 10년 동안 너무 숨막히는 음악만 좋아하고 연주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늘 얘기했었는데 저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매력을 느끼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올해는 차이콥스키 협주곡도 연주하고 오랫동안 연주하지 않았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파가니니 변주곡 등을 연주하기도 하죠.”


◇슬럼프라고는 모르는 못말릴 클래식 덕후,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제 직업은 클래식 애호가이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일이죠.”

김선욱은 ‘클래식 덕후’(Classical Music Nerd)임을 자청하며 “어떤 음악가든, 어떤 음악이든 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털어놓았다.

“연주를 하러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열리는 공연들을 찾아보고 악보점과 음반점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요.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예술사) 다닐 때도 그랬어요. 학교가 예술의전당에 있잖아요. 매일 하는 투어가 악보점, 레코드가게를 들러서 훑어보는 거였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도 일이 되는 순간 슬럼프가 오거나 힘들어지지 않냐”는 질문에 김선욱은 반문으로 현답했다. “저는 지금까지 슬럼프를 느끼거나 피아노가 싫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음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며 “피아노 연주 뿐 아니라 음악의 즐거움은 너무 다양하게 느낄 수 있지 않냐”고. 이번 한국 리사이틀에서 선보일 작곡가들과 음악 역시 그 과정에서 찾아온 “음악하는 즐거움”의 하나다.

“슈베르트는 되게 어렸을 때 처음으로 음악이 좋다고 느끼게 해준 작곡가였어요. 어머님이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을 자주 틀어주셨는데 듣다가 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악보를 사다주셨는데 그게 ‘슈베르트 즉흥곡집’이었어요.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도 모른 채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느끼게 해준 사람이 슈베르트였죠.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으면 지금도 그 아름다움에 놀라곤 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든요.”

알베니즈는 그가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연주를 하러 가는” 스페인 여행 중 조우한 작곡가다. 그는 “유럽에서 15년 정도 살고 있지만 스페인은 유럽 안에서도 낯선 풍경의 나라”라며 “음악도, 나무 모양도 이베리아 반도만의 캐릭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김선욱(사진제공=빈체로)

 

“음악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들의 클리셰가 있어요. 로마에 가면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의 ‘로마 3부작’(‘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분수’ ‘로마의 축제’로 구성된 교향시)을 들어요. 독일 뮌헨에 있을 때는 슈트라우스와 바그너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할 것 같고 (독일의) 본이나 (오스트리아) 빈엘 가면 베토벤을, 잘츠부르크에 가면 모차르트를 듣죠. 스페인에 가서는 스페인 작곡가 알베니즈, 그라나도스 등의 음악을 무작정 들었는데 알베니즈 곡들이 풍경이랑 너무 잘 어우러지는 거예요. 그의 매력에 눈을 뜬 거죠.”

 

이어 “스페인에 갈 때면 어김없이 알베니즈의 음악들을 듣는데 너무 좋다” 털어놓은 김선욱은 리스트에 대해서는 “피아노 문헌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작곡가”라고 표현했다.

“피아니스트들이 악보를 보지 않고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일을 만든, 악명 높은(?) 사람이기도 하죠. 리스트는 문학과의 연계, 표제 음악의 선구자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작곡가예요.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나 기교가 필요한 곡들의 작곡가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의 음악이 가지는 성숙도는 엄청나요. 정말 많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죠.”


◇하루하루 충실하게, 매년 1%씩 성장해 34% “100%는 없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1%의 의미는 단순해요. 꾸준함이죠. 꾸준함이 제일 어렵다는 걸 아주 어려서부터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어려워요. 항상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김선욱은 언제나 “매년 1%씩 발전하는 예술가를 꿈꾼다”고 말하곤 한다. 그 1%에 담긴 “꾸준함”과 더불어 김선욱은 “초심”을 언급했다.

“제 나이가 만으로 34세니 지금의 제 자신이 34%라고 믿고 싶은 거예요. 애초부터 100%를 채울 마음이 없는 거죠. 50%가 넘어가면 슬플 것 같아요. 34%라고 생각하면 아직 제가 발전하고 늘 공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겠다는 꿈이 생기는데 50%가 넘어가면 점점 사라질 거 아니에요. 그게 슬펐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34%라고 생각하면 21%일 때보다는 아쉬워요. 예전엔 ‘난 아직 20%밖에 안왔어’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싶어서 정말 행복하고 좋았거든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갈 길이 멀다’도 행복으로 인식하는 김선욱은 “난 다 이뤘어 보다 좋다”며 “저는 ‘갈 길이 멀구나’가 좋은데 어느 순간 바뀔까 걱정이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이번에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커리어 초창기(김선욱은 이 곡으로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첫 아시아 출신 우승자가 됐다)부터 꾸준히 연주하던 곡이에요. 이 곡은 녹음도 두번 했어요. (마크 엘더 경이 이끄는) 영국의 할레 오케스트라, 정명훈 선생님·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와. 똑같은 브람스 콘체르토(협주곡) 음반도 몇년 전 녹음한 걸 들으면서 끔찍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지금이 그때보다는 나은 음악을, 연주를 하고 있구나 느끼곤 하죠.”

그렇게 매년 1%씩 성장하는 자신을 느낀다는 김선욱은 오래도록 피아니스트로 살았고 지난해부터는 지휘자의 삶도 시작됐다. “여전히 피아노가, 음악이 너무 좋다”는 김선욱은 “지구상에 있는 피아노곡도, 지휘곡도 죽을 때까지 다 연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래서 꾸준함이, 초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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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그리곤 “그것보다 어려운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 못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해서 1년에 1%라도 성장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저라는 사람은 꾸준해야 음악을 이해하고 소화시키는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저는 벼락치기가 너무 싫어요. 어느 곡이든 연주를 한다면 소화할 시간이 길게 필요하죠. 물론 빠른 시간에 해야 한다면 해내기는 해요. 하지만 스스로의 만족도가 다르죠. 긴 시간을 투자해 소화시키는 데서 나오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거든요. 문제는 그렇다고 제가 그 곡을 완벽하게 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당시에는 잘 알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보이거든요. 정말 끝없는 굴레죠. 음악은 이해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어요. 그래서 음악이 좋은가 봐요. 알면 알수록 더 알 수가 없어서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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