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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이 세 마디로 충분하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

[책갈피]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입력 2024-09-25 18:33
신문게재 2024-09-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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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하라다 마하(사진제공=빈페이지)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 잘 다녀왔어” 


이 세 마디면 충분하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여행. 연예인으로는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이 두 가지를 타고난 오카 에리카, 애칭 ‘오카에리’(잘 다녀오셨어요, 어서 오세요) 이야기는 그래서 눈물겹고 위안을 전한다. 

 

큐레이터 출신의 작가 하라다 마하의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는 연애도, 여행도, 결혼도, 육아도, 이혼도, 솔로 탈출도, 재혼도, 창업도, 성묘도 TV나 간접경험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직접 경험 보다는 타인을 보며 안전함과 만족을 추구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소설이다.


아이돌에서 아이돌 출신 배우로, 안팔리는 배우로 내리막길을 걷더니 급기야 유일했던 TV방송 프로그램 ‘소소 여행’마저 폐지돼 버렸다. 에리카는 단 하나 뿐이던 프로그램 스폰서 명을 라이벌 브랜드로 잘못 말하는 통에 유일했던 일자리를 잃었고 ‘노출’ 화보를 제안받는 처지가 돼버렸다.

홋카이도 최북단의 레분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여행을 꿈꿨다. 바다 너머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던 에리카의 꿈은 도쿄 수학여행에서 섬 메신저로 활약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요로즈야 엔터 사장의 제안으로 아이돌 멤버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지만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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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하라다 마하(사진제공=빈페이지)

엄마는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막장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는, 자꾸만 잦아지는 고난을 마주할 때면 사장은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래?”라고 묻는다. 어쩐 일인지 사장 역시 “고향으로는 못돌아가. 비겁한 어른이 돼 버렸어”라고 자책이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5년 장수 프로그램의 저력은 에리카를 다시 여행하게 한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루게릭)으로 움직일 수 없는 딸 마요를 위해 대신 여행을 해달라는 엄마 우노씨의 의뢰를 받고서다.

화도(花道)로 유명한 우도 가문 사람들의 ‘대리 여행’ 의뢰는 인공호흡기를 거부하는 마요의 목숨 그리고 어긋나버린 아버지와의 관계가 걸린 절체절명의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유명한 아키타 현 가쿠노다테, 우도 가의 마지막 가족여행지였다. 폭우로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뉴욕행 꿈마저 멈춰버린 곳.  

 

예보에도 없던 폭우, 4월에 어울리지 않는 함박눈 등 고난이 끊이지 않지만 그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그들이 마요에게 진심으로 전하는 “꼭 놀러 오세요!”라는 말들로 이야기는 온기를 더한다. 그렇게 에리카의 첫 ‘대리 여행’은 우여곡절 끝에 마요의 삶의 의지 부활,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그리고 “내년에는 함께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꿈으로 이어진다. 

 

‘소소 여행’의 유일한 스폰서였던 에다 소스의 에츠코 에다 회장, 집안이 어려웠던 시절 먼 친척집 양자로 보내진 막내 여동생 미에코, 그의 유일한 혈육이자 ‘덴가와 마리’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활동을 했던 마리코 그리고 요로즈야 엔터 사장이 얽힌 사연까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에히메 현 우치코츠 시코쿠에 홀로 사는 마리코와 이 대리 여행의 의뢰 시점부터 행방불명돼 버린 사장, ‘소소 여행’의 사활을 건 미션에 에리카는 여행을 통해 사람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성장하고 진짜 여행자가 돼간다.

저마다의 상처와 슬픔을 품은 이들은 추억들에 손을 흔들어 인사할 때,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 딸을 잃고 사랑하는 부인에게 버림받은 자포자기의 순간, 꿈으로 빛나던 때 그리고 오래도록 존재조차 몰랐던 하나 뿐인 조카의 ‘여행하지 않으실래요?’라는 메시지에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손짓하는 이들이 있고 에도 회장과 에리카처럼 양자로 떠나는 미에코와 사라져 버린 사장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라고 말할 상대와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의미한 여행은 없다.”

유준상, 공승연, 김재영 주연으로 드라마화돼 편성을 기다리고 있는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는 ‘삶이 곧 여행’임을 각인시킨다.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던 엄마와의 통화는 공감대이자 힐링 포인트다. 

 

더불어 구로이시의 국물야키소바, 가쿠노다테의 다자와 호 옆 눈 내리는 4월의 노천온천과 꿀 가게, 히나이 토종닭 요리, 나마모로코시, 이치코 명물 도미밥과 단풍 등 쏠쏠한 여행지 정보와 시골 작은 마을 아낙네들 수다 속에 등장하는 ‘이병헌’에 대한 반가움 등은 덤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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