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데스크 칼럼] 45년만의 최저성적? 어쩌면 진정한!

입력 2021-08-10 13:59
신문게재 2021-08-11 19면

20210629010006744_1
허미선 문화부장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후 45년 만의 최저성적.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이후 금메달 및 총 메달 수 최저. 종합 16위.



코로나19 팬데믹 심화 속에서도 강행된 2020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한국 대표단 성적에 대해 각종 미디어에서 언급되는 숫자들은 이랬다. 하지만 국민들의 ‘체감’ 지수는 다르다. 국민들은 “이보다 더 올림픽다울 수는 없다”고 열광했고 아낌없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원없이 즐겼다. 경기 패배, 기록 달성 실패, 노메달 등에도 통곡하는 풍경은 없었다. 서로를 보듬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거나 관객들의 기운을 받기 위한 기분 좋은 ‘파이팅’, 실패나 패배에도 즐거운 기운으로 충만했다.

세계 랭킹 14위에 불과하지만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4강 신화’를 이룬 여자배구, 24년 만에 한국신기록과 아시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4위에 이름을 올린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 한국 여자 기계체조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달을 목에 건 여서정, 9년 만에 한국 체조계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긴 신재환, 자조 섞인 ‘비인지’ 종목으로 인식됐던 근대5종과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생각지도 못한 선전으로 희망을 전한 전웅태와 서채현, 양궁경기장에 울려 퍼진 열일곱 살 김제덕의 우렁찬 ‘파이팅’…. 이들은 메달을 목에 걸든 걸지 못했든 ‘페어플레이 정신’ ‘개인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올림픽 출전자다운 면모를 보이며 지켜보는 이들까지 즐겁게 했다.

반면 여자배구, 우상혁 등과 같은 4위이지만 절체절명의 경기 중 껌을 질겅거리는가 하면 베이스커버 실수 등 느슨해진 모습을 보인 야구대표팀은 맹비난 대상이 됐다. “저희가 원하는 색은 아니지만”이라는 전제로 드러낸 미디어의 시대착오적 메달 지상주의, 메달이 없으면 연금도, 군 면제도 없는 성적 중심의 포상체계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쇼트커트 안산 선수에게 가해지는 ‘페미니스트’ 공격과 ‘여혐·남혐’ 의혹은 국제적 망신으로까지 불거졌다.

주최국 일본은 어떤가. 금메달 27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17개로 역대 최고 성적. 종합 3위. 대부분의 만류에도 올림픽을 강행했던 개최국 일본의 수식어는 꽤 성공적이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자국 국민들, 해외의 ‘체감’ 지수는 정반대다. 일본에서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며 최저치를 기록했고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개회식, 체계적이지도 일정하지도 못한 구멍투성이의 코로나19 방역, 적절치 못한 이동수단·숙박시설·음식 통제, 스포츠클라이밍의 ‘욱일기 형상’ 암벽 논란 등으로 얼룩졌다.

선수들, 국민들의 변화에 미디어들도 변했다. 막장 올림픽 중계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MBC는 파격적인 조직 혁신을 발표했고 미국, 중국 등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순위 산출 방식으로 신경전을 벌이는 데 대해 “올림픽은 순위 발표가 없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2020 도쿄올림픽은 몇몇을 제외한 선수들과 국민들에게 승패, 순위, 성적 등이 아닌 올림픽정신, 경기에 임하는 자세 등이 더욱 가치를 인정받은, 그 어느 때보다 올림픽다운 올림픽이었다. ‘45년 만의 최저성적’을 낸 올림픽에서 건져 올린 올림픽 정신과 건강한 담론이 그래서 반갑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