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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은둔형 인싸' 미국은 왜 한일 화해에 목매나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이성대 '미국은 왜'

입력 2024-06-29 07:00
신문게재 2024-06-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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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미국이 많이 흔들린다. 부동의 ‘원 탑’ 국가에서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 책은 기자인 저자가 현실의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18가지 질문을 토대로, 미국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미국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이상한 정상국가”라고 표현한다. 고립주의와 관여주의를 오가는 냉탕·온탕 외교 속에서도 강대국 패권을 늘 움켜쥐고 있는 미국의 숨겨진 힘과 치부를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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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이성대|부키

◇ ‘정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의 전통


한국은 정치가 너무 첨예하고 날카롭기에 드라마 등에서 직접적인 묘사가 어렵다. 정당 이름조차 실명을 쓰지 못하니 서사의 현실성도 한참 뒤떨어진다. 하지만 미국은 현실 정치 드라마의 천국이다. 정당 이름은 물론 대놓고 비판하기 일쑤다. 워싱턴의 야구장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가면을 씌워 달리기 이벤트까지 열린다. 1등은 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다.



워싱턴이 지금까지 추앙을 받는 것은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난 덕분이다. 대통령제라는 최신 제도를 도입하고도 장기독재를 우려해 ‘4년씩 두 번, 최대 8년’이라는 대통령 임기의 전통을 만들어 냄으로써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민주당 혹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상대의 정치 성향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 전통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 미국의 특이한 선거 제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에서 이기고도 정작 개표에서 지는 일이 흔하다. 일반 유권자가 뽑은 선거인단이 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국가 중 유일하게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지 않는다. 개별 주에선 주지사부터 대법관, 검사장까지 모두 직접 뽑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장 민주적인 국가인 동시에 가장 비효율적·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건국 초기엔 기술적 문제 탓도 있었지만, 지금은 제도를 바꿀 의지가 거의 없다. 간선제와 승자독식제가 결합된 복잡한 구조에서, 자칫 인구가 적은 주의 주권이 불이익을 당해선 안된다는 정신이 더 강하다. 때문에 대선 기간 중 50개 주 전체를 도는 게 아니라, 자당의 텃밭인 몇 주만 집중 공략하는 게 흔하다. 다만, 우편 투표에 관한 찬반 논란은 여전하다.



◇ 10달러 지폐 주인공이 ‘해밀턴’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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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해밀턴’ 공연장면. (사진출처=해밀턴 홈페이지)

 

미국에는 1달러부터 100달러까지 일곱 종류의 지폐가 있는데, 대통령이 아닌 사람이 딱 두 명 인쇄돼 있다. 100달러의 벤저민 프랭클린과 10달러의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프랭클린은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상가·정치인이자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로 ‘최초의 미국인’이라 추앙하는 인물이다. 해밀턴은 3대 대통령 제퍼슨의 재무장관일 뿐이지만, 미국 경제력을 키운 8할의 공로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밀턴은 농업국가가 될 뻔 했던 미국을 자본주의 나라로 돌린 장본인이다. 관세를 도입해 재정을 튼실하게 했고, 필라델피아에 중앙은행을 설립했으며, 달러 화폐 도입을 이끌어냈다. 이후 미국은 엄청난 압축성장 속에 ‘자급자족의 나라’가 되었다. 2015년 한 때 흑인 인권 운동가를 10달러 지폐에 넣는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뮤지컬 등에서 엄청난 그의 공적이 재 조명되면서 백지화되기도 했다.

 


◇ ‘앤드루 잭슨’이 되고픈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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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선셋 파크에서 유세하고 있다.(EPA=연합)


오바마가 만든 ‘부자 대 노동자’의 계급 구도를 트럼프는 ‘이민자 대 노동자’로 바꿔 집권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엘리트 정치를 끝내고 서민 민주주의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과 자신을 자주 비교한다. 잭슨은 좋은 집안과 귀족 계급, 학벌 등을 깨뜨린 새로운 전형의 정치인으로, 기득권 정치에 도전했던 최초의 포퓰리스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고집스럽고 거침없는 언사로 ‘올드 히코리(불의를 못 참거나 굽힐 줄 모르는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8년 내내 인기절정이었고, 20달러 지폐의 주인공까지 꿰찼다.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 그의 초상화를 건 이유다. 잭슨의 ‘인디언 추방법’처럼, 트럼프는 멕시칸의 이주를 막았다. 트럼프는 소수 극렬 지지층에 의존한 독특한 정치로 대통령이 됐고 이제 재선을 노리고 있다.


◇ 미국은 중국이 배신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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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미국은 ‘차이메리카’라는 장밋빛 신세계를 꿈꾸었다. 중국을 포용해 자유주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팍스 아메리카나’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중국이 동화될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미국이 부풀어 있을 때, 중국은 가열차게 미국을 따라잡는 ‘중국몽’을 꾸고 있었다. 중국 견제를 게을리 하고, 천안문 사태까지 눈 감아 준 결과가 지금의 ‘막강 중국’이고, 중국의 ‘도광양회’ 결과였다.

저자는 “미국이 직면한 (중국에 대한) 모욕감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한다. 오마바 정부 때 뒤늦게 아시아로의 유턴을 선언했지만 너무 늦었다. 중국에 요란하게 선전포고만 했지, 정작 실질적인 압박 조치도 없었다. 중국의 빗장을 열었던 닉슨 전 대통령이 말년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트럼프 때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결국 “우리가 중국이라는 크랑켄슈타인을 낳았다”고 개탄했다.

 


◇ 툭하면 ‘고립’ 유혹에 빠지는 미국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외교는 ‘은둔형’에 가까왔다.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불가근 불가원’을 강조한 탓도 있지만, 1941년 진주만 습격 전까지 미국은 가능한 외부 개입을 삼갔다. 이후론 ‘고립’과 ‘관여’를 반복했다. 더 이상 세계가 안전하지 않다 싶을 때만 나섰다. 미국이 ‘반장’ 역할을 주저하는 사이에 세계는 힘의 진공 상태를 맞았다. 독일의 파시즘과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렇게 탄생했다.

고립주의의 한계를 깨달은 미국은 이후 적극적인 관여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언젠가 위험이 될 리스크를 미리 제거하는 데 주력했다. 저자는 “미국이 1차 대전 직후 고립주의를 포기했다면 2차 대전도 일어나지 않았고, 러시아가 아직 소련이 되기 전 미국이 관여 기조로 돌았다면 냉전은 탄생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고 말한다.



◇ 중동에서 갈팡질팡한 미국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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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앙숙,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2023년 3월 10일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했다. (사진=연합)

 

2023년 3월 10일, 이슬람 패권을 놓고 꾸준히 대립해 온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관계 정상화에 깜짝 합의했다. 이처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게 현실의 중동이다. 이 곳에서 ‘큰 형님’ 역할을 하던 미국이 떠나면서 생긴 일이다. 1979년 동맹이던 이란이 이슬람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반미 국가로 돌변한 게 그 시작이었다.

미국은 이란 견제를 위해 후세인의 이라크를 지원했고 이후 걸프전,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IS의 출현까지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전통의 친미국가 사우디도 홀로 서기로 미국과 멀어지고 있다. 심지어 중국과 석유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해 미국을 애태우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결국 중동으로 다시 러브 콜을 보내고 있지만 한번 틀어진 관계를 정성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미국 때문에 파국 위기 ‘나토(N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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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베이징에서 회동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연합)

나토는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이름 때문에 지역적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데 미-소 냉전이 끝나자 러시아가 있는 동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나토의 동진을 러시아 푸틴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자 새로운 포위 전략으로 간주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영구적으로 영향력을 박탈하려는 시도로 해석한 것이다.

나토는 내심 ‘북대서양’ 대신 ‘북태평양’을 꿈꾸었다. 2022년 6월 스페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그 신호탄이었다.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분명한 도전세력으로 규정했다. 중국도 그런 기운을 간파하고 과거의 적,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미국은 계속 나토에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저자는 “나토의 꿈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정작 미국 때문에 금이 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 미국이 ‘한미일 매직’에 꽂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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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3가 공조의 주역들.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연합)

 

미국은 중국을 저지할 마지노선 남중국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미일 3국 중심의 블록화는 필수다. 과거에는 한일, 한미 관계로 족했지만 이제는 역내 동맹국들의 군사력 통합이 절실하다. 그 솔루션이 ‘격자형’ 안보 틀이다. 일부 거점 동맹국 중심에서 탈피해 ‘쿼드’와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오커스’, 그리고 한·미·일, 미·일·필리핀 3국 회의 등 소그룹별로 중국을 더 촘촘히 견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한미일 3각 구도로 재편될 경우 미국과 일본의 이익은 분명한 반면 한국의 이익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한미동맹체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3국 안보협력의 실익은 약한 반면 자칫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미중 갈등에 휘말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에서 한미일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 과거사 문제에 우리 편을 들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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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미국 글렌데일에서 열린 소녀상 건립 10주년 기념식. 글렌데일은 해외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건립된 첫 도시이다.(연합)

미국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일 과거사 문제를 인권문제이자 미국식 자유주의 가치로 접근하면서 우리 입장을 지지했다. 일본과는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런데 2015년을 전후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일 과거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보다는 빠르게 해결하는 데 더 집중했다. 누구 잘못을 따지기 보다 서둘러 화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오바마-바이든 정권에서 한일 문제는 이제 안보 이슈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견제라는 큰 목표에 몰두한 나머지 이제는 한일을 어떻게든 빨리 화해시켜 아시아 안보의 틀을 서둘러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가장 손해를 본 것은 바로 일본 옆에 있는 한국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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