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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마뜩잖은 이들의 “왜 가난하고 그래”…언젠가는 지렁이도 걷게 될지 몰라?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몬티 나바로와 다이스퀴스 가문 사람들, 연인 시벨라와 결혼상대 피비 등이 펼쳐가는 블랙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서경수·김동완·유연석, 1인 8역의 이규형·오만석·한지상, 임소하, 김아선 등 출연
'왜 가난하고 그래?' '레이디 히아신스로 해외로!' '결혼은 누구와' 등 넘버 눈길

입력 2018-12-29 18:00

[젠틀맨스 가이드] 반대로 - 서경수, 김아선(제공.쇼노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사진제공=쇼노트)

 

어쩌면 조롱이고 또 어쩌면 경고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2019년 1월 2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은 사랑에도, 세상에도, 삶에도 순수했던 청년 몬티 나바로(서경수·김동완·유연석,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가 자신이 다이스퀴스 가문의 8번째 백작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다.



2014년 토니어워드를 비롯해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외부 비평가협회상, 드라마 리그 어워드에서 베스트 뮤지컬로 선정되며 그랜드 슬램을 기록한 작품으로 한국 프로덕션은 무대부터 다르다.  

 

[젠틀맨스 가이드] 왜 가난하고 그래 - 서경수(제공.쇼노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의 ‘왜 가난하고 그래’ 중 몬티 나바로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쇼노트)

브로드웨이 버전과 달리 무대 전체가 몬티가 일기처럼 꾸린 한국 프로덕션은 김동연 연출, 양주인 음악감독, 오필영 무대디자이너 등이 의기투합했다.  

 

처음엔 그저 다이스퀴스 소유의 은행 취직이면 됐다. 하지만 마땅하지 않은 지위와 권력, 부를 거머쥔 마뜩잖은 다이스퀴스(이규형·오만석·한지상) 가문 사람들이 조상들까지 단체로 등장해 ‘왜 가난하고 그래’를 돌림노래처럼 불러대며 조롱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 시벨라 홀워드(임소하)는 다이스퀴스 가문의 8번째 백작 후계자라는 말에도 “또 알아? 언젠가는 지렁이도 걷게 될지”라고 비아냥거리며 부잣집 남자와의 결혼에 열을 올린다.

“하늘의 뜻”을 강조하며 이중성을 보이던 에제키알 다이스퀴스 목사가 죽음을 맞는 과정은 억울한 몬티에게 기묘한 깨달음(?)을 전한다.

심하게 부는 바람에 목사가 창밖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팔을 뻗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다이스퀴스 백작 후계자 중 한명을 간단하게 해치웠다. 그렇게 몬티의 다이스퀴스 백작 후계자 퇴치 작전은 시작된다.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1막은 블랙코미디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게 풀어낸다. 다이스퀴스 백작 후계자를 죽여 없애는 과정들이 유쾌하면서도 통쾌하게 이어진다. 그 지난한 과정들은 각종 다이스퀴스를 연기하는 1인 다역 배우의 말못할 노고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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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의 ‘레이디 히아신스를 해외로’를 부르는 이규형(사진제공=쇼노트)

 

스케이트장에 얼음구멍을 내거나 향수로 벌떼에 둘러싸이게 하거나 운동기구의 무게를 늘리거나 소품 총에 실탄을 넣어둠으로서 바람둥이 애스퀴스, “남자가 더 좋아”를 외치며 몬티에게 호감을 보이는 헨리, 보디빌더 바톨로뮤, 발연기 배우 레이디 살로메가 죽음을 맞는다. 


다이스퀴스들 중 가장 큰 웃음을 자아내는 이는 단연 자선사업가 레이디 히아신스다. 자선사업 거리를 미끼로 이집트로, 인도로, 아프리카로 보내고 또 보내도 몇 번이고 살아서 돌아오는 히아신스는 1인 8역을 소화하는 다이스퀴스 배우들의 매력이 응집된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젠틀맨스 가이드] 너 없이는 어쩔까 난 - 임소하(임혜영)(제공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시벨라 역의 임소하(사진제공=쇼노트)

다이스퀴스 가문 사람들 중 유일하게 몬티를 인격적으로 대했던 은행가 애스퀴스 다이스퀴스 시니어마저 심장마비로 죽고 단 한 사람, 현재 하이허스크 성의 주인인 애댈버트 백작만이 남았다. 

 

그렇게 2부는 애댈버트 백작과의 사투(?)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시벨라와 결혼상대로 적합한 피비 다이스퀴스(김아선)를 사이에 둔 밀고 당기기(이하 밀당)에 집중한다.

 

이에 2부를 대표하는 장면과 넘버는 ‘결혼은 누구와’(I‘ve Decided to Marry You)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열정을 불태우게 하는 여자 시벨라와 믿을 만한 피비 사이를 오가며 결정을 하지 못하는 몬티는 인간과 삶의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마뜩잖은 변화를 맞는다. 

 

원래는 사랑꾼이었고 나라를 위해 용맹하게 싸운 참전용사이기도 했던 애덜버트 백작이 그랬듯 순애보를 불태우던 청년은 사라졌고 몬티는 결국 마땅하지 않은 지위를 손에 넣었다. 

 

허영과 허세로 똘똘 뭉쳐 속이 빤히 보이도록 다가오는 시벨라와 평생을 함께 할 정도로 믿음이 가는 피비, 인생의 두 가지 면을 대변하는 듯한 여자들과의 밀당에 극의 장르는 블랙코미디에서 치정극으로 전환된다. 

 

[젠틀맨스 가이드] 프롤로그-관객들을 위한 경고(제공.쇼노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사진제공=쇼노트)


그 과정에서 1막 만큼의 재기발랄함과 촌철살인과도 같은 통쾌함이 사라진 2막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둘 다 가질 수 있다는 마뜩잖은 욕심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가 하면 마땅하지 않은 방법으로 백작이라는 지위를 얻게 된 몬티, 그를 지키겠다고 마뜩잖은 선택을 하는 여자들, 새로운 백작이 된 몬티를 노리는 또 다른 다이스퀴스 후계자의 등장 등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왜 가난하고 그래”를 외치는 마뜩잖은 사람들 사이에서 시벨라의 비아냥처럼 지렁이가 직립보행하는 날은 올 것인가. 그렇게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는 한참을 넋 놓게 웃게 하다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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