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시장경제칼럼]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은 어떻게 최장수 헌법이 되었나

입력 2024-07-01 07:40

2023042401001651300071241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요즈음 우리는 “법대로”라는 말을 야당 정치인들로부터 많이 듣는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탄핵이며 자신들 입맛대로의 개헌까지도 밀어 부치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는 ‘다수에 의한 폭정’일 뿐인 자신들의 행위를 ‘법치’라 한다. 이제 우리 민주공화정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 정치학자는 신문칼럼에서 현 헌정질서의 위기를 우리 헌법에 내재된 원인과 민주주의의 성숙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첫 번째는 직선제 개헌으로 대통령과 국회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의 문제이다. 정통성의 우위를 둘러싼 대결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는 늘 패자였다. 대통령은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국회 해산권이 없는 대통령은 제도적으로 약자다. 만약 정당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이 약하고 국민의 지지가 낮으면, 대통령은 국회의 손쉬운 먹이감이 되기 때문이다.

후자는 한국민이 지금 처음 목도하는 ‘다수의 폭정’은 민주주의가 우중(mob)의 원한(르상티망)과 결합할 때면 드러내는 민주주의의 속성에서 도출되는 일반론이다. 필자도 ‘민주주의는 자살한다’ (2015), ‘민주주의의 죽음: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사한가’ (2018)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이제 시선을 세계 최장수 헌법으로 돌려보자. 한국 뿐만아니라 모든 대통령 중심제 국가 헌법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미국헌법은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안정성과 내구성을 과시하며 장수하고 있을까. 먼저 위에서 언급한 ‘이원적 정통성 문제’는 없는 지부터 살펴보자. 미국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가 선거인단을 뽑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이고 국회의원은 직선이다. 국회해산권이 없기는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보다 국회에 대해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에는 아직 탄핵된 대통령이 없다. 이런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헌법제정 과정의 토론에서 엿볼 수 있는 입법의도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외 없이 전제정치로 타락한 그리스-로마공화정의 실패가 민주주의의 실패라는 확신을 가졌던 미국헌법작성의 주역들인 ‘연방주의자’들은 정치 선동가들이 대중을 선동할 기회를 만들기 어려운 제도를 고안하려 노력했다.

당연히 직접보다는 대의민주주의를 선호해서 간선의 대통령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회도 양원제로 하여 직선제의 하원이 근시안적 대중의 열정에 휩쓸리는 것을 상쇄할 상원은 주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상원의원 직선제는 수정헌법17조가 비준된 1913년부터이다. 그간 230년이 넘는 미국헌법의 역사에서 5번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하원에 제출되어 4번 가결되었으나(닉슨대통령은 표결 전 사퇴), 상원 심판에서 모두 부결되어, 아직 탄핵된 대통령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를 1913년 이전 120년과 이후 110년으로 나누어 보면, 5번의 탄핵 소추안 중 한번 만이 직선제 수정이전이다. 1대 4라는 차이는 직선제 수정헌법이 이원적 정통성이 야기하는 경쟁을 부추긴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상원의 심판 결과는 지금까지 미국의 민주주의를 떠받쳐준 불문률로서의 다른 규범인, 상호관용(tolerance)과 절제(forbearance)가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민주주의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을 헌법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연방주의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헌법도 ‘이원적 정통성’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다수의 폭정’이라는 민주주의에 내재된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면, 미국헌법의 장수는 어떻게 설명할까.

필자는 미국헌법을 벤치마킹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따라하지 못한 두 가지를 미국헌법의 안정성과 내구성의 원천으로 판단한다. 그 첫째는 삼권분립의 목적에 부합하는 3부간 관계설정과 거의 완벽한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이고, 둘째는 헌법 수정을 어렵게 한 장치와 헌법이 존중되도록 기울인 노력이다.

1787년 헌법 비준에 반대하던 ‘반(反) 연방주의자’ 들이 제기한 중요한 반대논리 중 하나가 삼권분립의 원리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정부의 세가지 기본 기능을 수행하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기관들은 상호간에 엄격한 배타성이 요구되는데, 헌법은 이들 상호간에 기능이 중복(overlapping)되고 권력을 공유(sharing)하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반연방주의자’ 들에게 삼권분립은 3부의 격리와 불간섭이었으나, ‘연방주의자’들의 삼권분립에 대한 이해는 달랐다.

삼권분립은 연방정부의 전제화를 막기 위한 수단의 외형이고, 그 작동방식이 삼권 서로 간의 ‘견제와 균형’ 인데,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기능 중복과 권력 공유’가, 필수라는, 즉 서로 간에 연결되고 얽혀 있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필요하면 간섭할 수 있는 헌법적 통제수단도 주어져야 견제도 하고 균형도 잡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 같은 3부간의 관계설정에 더해, 제한된 기능으로 인해 자칫 약해지기 쉬운 사법부에 판사직을 종신제로 하고, 재임 중 보수가 감액되자 않도록 보장해 거의 완벽한 사법부의 독립성을 확보한 것이다.

두번째인 헌법수정을 어렵게 한 장치는 다름 아닌 헌법 제5조의 헌법수정 절차이다. 상하 각원의 3분의 2의 찬성으로, 또는 각 주중 3분의 2의 주의 요청으로 발의되고, 4분의 3의 주 이상에서 비준되어야 한다. 이 발의 및 비준 요건이 얼마나 높은 문턱인지는 다음 숫자들이 보여준다. 지금까지 연방의회는 1만 2000여 개의 헌법 수정안을 심의했고, 33개의 수정안 만이 통과되어 각 주에 회부되었다.

그 중 27개 수정안이 비준 발효되었다. 수정은 어렵더라도 시대변화로 헌법이 진부한 것이 되는 것을 막고, 법해석으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법조문 작성도 평가되어야 한다

건전한 지배원리를 헌법에 담으려 애쓴 연방주의자들은 수정헌법 권리장전의 작성을 헌법에 대한 국민의 존중과 친근감을 높이는 기회로 삼았다. 권리장전으로 보장되는 권리들이 특정 정치철학이나 신학적 기초를 연상시키지 않도록, 또 새 정부를 약화시키거나,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거나, 정부에 대한 저항을 부추기지 않도록 어휘선택이나 문장 순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개인의 권리가 연방정부에 의해 존중되고 보호받는다는 확신을 갖도록 작성해 헌법에 대한 존중과 친근감이 헌법 자체에서 우러나오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미국헌법은, 내가 아는 한, 인간의 두뇌와 목적의식에 의해 주어진 시간 내에 만들어낸 것들 중 가장 경이로운 작품이다.” (영국의 전수상 글래드스톤이 미국헌법 100주년을 기리며). 그래서 미국 헌법학자 Albert Blaustein이 ‘미국헌법: 미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라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브릿지경제 핫 클릭
브릿지경제 단독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