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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용기와 인내로 더욱 빛나는 무대

입력 2024-04-07 13:33
신문게재 2024-04-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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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2024년 프로야구 개막 후 한화 이글스의 초반 기세가 뜨겁다. 류현진이 아직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옥에 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존재감으로 확실한 에이스로서 팀 분위기를 바꾸며 개막 후 7연승이라는 질주를 이끌었다. 그의 힘찬 피칭을 볼 때마다 그동안 그가 겪었던 어깨와 팔꿈치 부상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류현진은 그때마다 꾸준한 재활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비상하며 팬들에게 다시금 안도와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부상의 위험이 따르는 건 스포츠만이 아니다.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 역시 부상과 뜻밖의 병마를 마주한 후 인내의 시간을 거쳐 무대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의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는 2005년 공연 리허설 도중 손가락을 다쳐 5년이나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

정경화에게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파르티타 전곡 녹음’이라는 숙원이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손가락 부상으로 그 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불투명했다. 그러나 부상 중에도 악보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정경화는 2010년, 부상을 이겨내고 기적적으로 무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2016년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파르티타’ 전곡 앨범을 발매했다.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투지로 응축된 이 앨범은 발매 후 약 1년 반 만에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한국 클래식 음반사에는 새로운 역사로, 팬들에게는 감동의 보고(寶庫)로 남게 됐다.

갓 스물이던 1980년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 없는 2위로 최고상 수상, 1988년 카네기홀 선정 ‘올해의 세계 3대 피아니스트’ 등으로 세계 클래식계에서 주목받은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2006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녀는 2008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협연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엔 데뷔 50주년을 맞으며 위로를 전하는 앨범 ‘내가 좋아하는 소품들‘(My favorite Works)을 발매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녀는 2008년 뉴욕에 ‘서혜경재단’을 설립해 유방암 환자와 형편이 어려운 피아니스트를 돕는 뜻깊은 행보로 음악을 넘어선 또 다른 삶의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 뜻하지 않은 어깨부상으로 한동안 악기를 들 수조차 없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는 바이올린 대신 지휘봉을 잡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절망의 순간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낸 그는 연주 외에 지휘라는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음악적 외연을 넓힘과 동시에 예술적 깊이를 더한 연주자다. “음악과 예술은 우리에게 삶의 길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을 반영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이라고 말한 벤게로프는 삶과 음악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거쳐 더욱 위대한 음악가로 거듭났다.

음악을 향한 치열한 열정으로 그는 2007년 지휘자로서 카네기홀 데뷔를 마쳤으며 2010년에는 그슈타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최초의 상임지휘자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당당히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재기에 성공했다. 재기 후 벤게로프는 전성기였던 20대 시절 보다 절제된 표현력과 세련된 음색으로 각광받고 있다. 삶의 한계를 치열하게 극복해낸 예술가들의 의지와 생명력은 이 시대를 힘겹게 관통하고 있을 모두에게 의미심장한 가치다. 그들에게 경외의 박수를 보낸다.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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