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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안전은 타협할 수 없습니다”…'외국인 근로자' 우수사업장에 가다

[특별기획] 안전보건공단, 안전동행지원사업…협동로봇 도입등 생산·품질 제고
2008년 협착 사고 계기 대당 3000만원 장비 전량교체…“매출 10~15% 신장”
존중·배려 입각한 사업장 정주 여건 개선…외국청년 코리아드림 ‘현재진행형’

입력 2024-10-13 15:42
신문게재 2024-10-1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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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근무 중인 팜 티엔 헨(베트남 국적) 에이치티엠 매니저가 협동로봇을 운용하고 있다.(에이치티엠)

 

안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절대 타협할 수가 없죠. 저는 직원들에게 위급상황에는 아무리 비싼 부품일지라도 당장 내려놓고 먼저 몸부터 피하라고 얘기합니다.”



지난 7일 경기도 화성 공장에서 만난 민필홍 에이치티엠 대표의 얘기다. 반도체 장비와 자동차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에이치티엠의 직원은 총 24명, 이 중 외국인 근로자는 14명(베트남·인도네시아)으로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외국인이 다수 근무하기에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미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 에이치티엠은 ‘고용허가제 우수사업장에’ 선정될 정도로 남다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자랑한다.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사업주의 안전강조, 외국인 정주 여건 개선, 안전보건공단 ‘안전동행지원사업’, 위험성평가(TBM) 생활화 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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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로봇 도입·멘토 선정 등…안전보건공단, ‘안전동행지원사업’에 생산성·품질 UP

회사 창업 초기인 20년 전 민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고용허가제도(E-9) 도입(2004년 8월 시행)과 거의 동시에 외국인인 근로자를 채용한 셈이다. 초창기에는 문화·언어 등의 차이로 어려움이 따랐지만, 지금은 전혀 걱정이 없다는 그는 되레 E-9의 한정된 쿼터를 아쉬워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민 대표는 지난 2008년 데리고 있던 직원의 손가락이 기계 회전체 끼이는 협착 사고를 겪었다.

민 대표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겪은 사고 중 가장 큰 사고 였는데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1970~1980년대 사용되던 기계들이라 안전 덮개가 부착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며 “이후 덮개가 없는 기계는 처분하고 새 기계로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기계의 대당 가격은 약 3000만원, 작은 규모의 업장에서 쉬운 선택이 아니었지만 민 대표는 4대 모두 교체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민 대표는 안전보건공단에서 시행 중인 ‘안전동행지원사업’에 동참해 제조현장에 ‘협동로봇’을 도입했다. 안전동행지원이란 중소사업장에 종합컨설팅 등 위험공정개선을 지원해 산업재해예방을 제고하는 사업을 말한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올해 예산은 3220억원으로 총 4025개 사업장의 공정개선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에이치티엠은 안전보건공단에서 1억원을 지원받고, 자체적으로 1억원을 더 보태 총 8대(대당 2500만원)의 협동로봇을 구매했다. 협동로봇이 회전체에 자재를 자유자재로 넣었다 빼주기 때문에 끼임 사고 위험성이 대폭 줄었다.

이에 따라 매출도 약 10~15% 성장했다. 에이치티엠은 지난해까지 평균 43~4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50억원을 전망하고 있다.

또 ‘건강일터 조성지원사업’에도 참여해 제조현장에 집진기 30대를 설치했다. 민 대표는 “집진기를 설치하려면 수천만원이 든다”면서 “회사 규모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데, 안전보건공단의 지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먼저 입사한 외국인 근로자를 현장 선임 멘토로 지정하는 멘토링제도도 운용 중이다. 같은 국적을 가진 근로자들을 묶어 회사 멘토가 현장 안전수칙과 공정 등을 모국어로 가르쳐주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멘토를 중심으로 하는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는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 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베트남(7명)과 인도네시아(7명) 두 나라 출신만 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주효했다. 사내 게시판과 현장 곳곳에는 이들의 모국어로 번역된 안전교육 자료가 부착돼 있었다.

이 밖에도 사업주 주재 안전교육 시행, 화재 시 소화기 사용 방법, 여름용 경량 안전모 지급, 지게차 충돌방지 전후방 카메라·라인라이트, 크레인 안전영역 표시 장비 설치 등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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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에이치티엠 경기도 화성 공장 사무실 입구에 벽면에 걸려있는 직원들의 야유회, 체육대회 등의 사진.(정다운 기자)


“일터이지만 생활하는 공간입니다”…정주 여건 개선 ‘코리아드림’의 원동력

에이치티엠 사무실로 들어가며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입구에 비치된 에이치티엠의 전설(장기 근속자)로 불리는 3명의 외국인 근로자 사진이다. 아울러 벽면 한 켠에 걸린 직원생일, 회식·체육대회 등의 사진을 보며 지난 20년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성장한 에이치티엠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작은 사업장에서 보기 힘든 ‘카페테리아’도 있는데, 족히 40~50명 이상을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음식·종교·문화가 다른 외국인 근로자를 고려해 대용량 냉장고도 3대 비치했다. 때문에 근무 외 시간에는 다양한 장소로 활용된다.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생일파티도 하고, 회식도 한다. 심지어 다른 사업장의 직원이 놀러 와도 된다. 민 대표는 “직원들이 시간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이런 재미라도 없다면 시골에서 버티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생활이 즐겁고 편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편의를 보장해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화성 내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소위 ‘핫플’이 됐고, 재미를 붙인 직원들의 재직기간도 함께 늘었다. 에이치티엠에 따르면 평균 재직기간은 5년 이상으로, 소수 인원을 제외한 대부분은 비자 기간이 만료할 때까지 일한다.

이들이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데는 회사와 외국인 근로자 사이 중간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노주미 매니저 역할도 크다. 노 매니저는 “직원들이 파티를 하고 치운다고는 하지만, 마지막에는 내가 어쩔 수 없이 마무리 청소를 하게 된다”며 “가장 오래 일한 ‘팜 티엔 헨(베트남 국적)’ 매니저는 17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꼰대’로 불린다”고 웃으며 설명하기도 했다. 얼핏 보기엔 힘든 것 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시종일관 직원들을 향한 애정이 묻어 나왔다. 노 매니저는 외국인 직원들의 아이가 몇 명(살)인지, 영주권은 취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취미는 무엇인지 모르는 게 없었다.

이처럼 회사가 외국인 직원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코리아드림’도 현실이 돼 가고 있다.

헨 매니저는 “숙련기능인력(E-7-4) 비자를 취득하며 지난해 영주권에 도전했는데, 심사에서 떨어져 내년 5월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헨 매니저는 지난달까지 아이 두 명, 와이프와 함께 살았지만 초청 비자가 만료돼 현재는 혼자 지내고 있다. 영주권을 무조건 취득하겠다며 의지를 다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5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프리요노 룰리 아르윈(인도네시아)씨도 “아기를 낳기 위해 인도네시로 잠시 가지만, 다시 돌아와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지낼 집도 마련해 뒀다”고 말했다. 코리아드림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업주의 배려와 존중에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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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근무 중인 팜 티엔 헨(베트남 국적) 매니저(오른쪽)와 5년 차 직원 프리요노 룰리 아르윈(인도네시아)씨가 지난 7일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다운 기자)


안전보건공단, 4대 금지 캠페인…16개국 언어 번역된 안전수칙 전파

한편, 안전보건공단은 ‘외국인근로자 우수사업장’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달 25일부터 ‘4대 금지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시행 중이다. 외국인 근로자와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문화를 확산한다는 구상이다.

주요 내용은 △안전장치 해제 금지 △모르는 기계 조작 금지 △보호구 없이 작업 금지 △작동 중인 기계 정비 금지 등의 안전수칙이 그림과 함께 번역된 16개국 언어로 제공된다. 안전보건공단은 전국 39개 지역의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을 통해 조선업, 소규모 사업장 등을 중심으로 현수막과 포스터, 스티커를 배포해 캠페인을 확산할 계획이다. 또 지역 축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론 등을 통한 홍보 활동과 더불어 ‘4대 금지 캠페인’ 참여 인증 챌린지도 시행해 관심을 끌어낼 방침이다.

화성=정다운 기자 danjung63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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