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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사라져가는 문화의 심장

입력 2024-10-03 13:26
신문게재 2024-10-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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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13만 관객을 동원했다. 뒤늦게 이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집 주변에서는 좀처럼 상영관을 찾기가 어려웠다. 멀티플렉스관 상당수 상영관이 ‘베테랑2’를 편성했고 옛 명작들이 조금씩 상영 중이었다. 다행히 최근 집 근처 한 상영관에서 영화가 편성돼 겨우 볼 수 있었다.



나는 2006년부터 약 8년간 정동극장과 명동예술극장에서 근무했다. 좋은 공연이 올라가는 공연장에서 일하는 보람 외에 당시 회사가 위치한 광화문과 명동 일대에는 크고 작은 좋은 공연장과 영화관들이 즐비했다.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휴식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특권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고맙게 지켜주고 있는 씨네큐브를 제외하고는 알찬 클래식 공연이 열리던 금호아트홀 그리고 각종 예술영화를 상영했던 씨네코아, 시네콰논, 스폰지 하우스 등은 문을 닫았다. 한국 영화의 상징이었던 종로 일대의 영화관들도 하나하나 폐관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충무로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한극장도 결국 문을 닫았다.

도심 속 공연장과 영화관은 단순히 오락과 유희의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며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하는 정신의 안식처같은 곳이다.

특정 연주자가 출연하는 공연과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OTT 플랫폼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소규모 클래식 공연장과 기존의 영화관은 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스타 연주자가 출연하는 고가의 공연은 금세 매진되지만 그 외 양질의 클래식 공연들은 텅 빈 객석을 보기 일쑤다. 손 안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고화질 콘텐츠의 선호는 멀티 플렉스 영화관의 존재도 위태롭게 만든다.

하나 둘 사라져가는 문화의 심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업계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클래식 관객을 유입할 수 있는 보다 참신한 기획, 양질의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시도, OTT 플랫폼과 협업한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상영 등을 고려해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새로운 공연장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문화공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연장과 영화관이 단순히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지역 문화 발전의 중요한 축임을 인지해야 한다. 예산 지원, 세금 감면 그리고 문화 행사 장소로서의 활용을 통해 문화적 공간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주말에 코인 세탁방에 세탁물을 맡기는 동안 헌책방에 가서 책 한권을 사며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주인공의 안식처가 된 헌책방처럼 누구에게나 안정과 영감을 주는 일상 속 문화공간이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특별한 곳이 아닌 루틴처럼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곁에 존재해야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매일 필름 카메라로 찍는 ‘코모레비’(木漏れ日)는 일본어로 ‘나무 사이사이 잠깐씩 비치는 햇빛’을 뜻한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를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삶의 위안이 되는 문화공간이 더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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